이슬람교의 시아파와 수니파

시아파는 현재 이란에서 맹위세를 덜치는 소수파 올습니다..
이란은 시아파 중에서도 일곱이맘파인데요..
시아파는 이슬람의 지도자는 오직 마호멧의 후손만이 될수 있고..
마호멧의 후손중의 지도자가 숨어 있다가 언젠가는 나타나 다시 지도자가 될것으로 믿는 파입니다.
칼리프-마호멧이후 지도자들을 인정안함
수니파는 정통파로.... 칼리프를 인정한 파입니다
현재 다수파로 대부분의 중동에서 ....
그런데 이란은... 원래 고유문화가 이슬람-아랍보다 뛰어난 민족인데..
아랍에 의해 자기 문화가 부정되고..
이란어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어려운 문화의 정체성으로..
소수 강경파를 선택했다는 말도 있고요..
이슬람은 아랍인이 주축이지만..
이슬람은 대개 시아든 수니든 서로 정통으로 인정합니다..
기독교의 이단 논쟁처럼 적대시 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형제라는 의식이 아주 강하지요..
하지만 민족의식보다 또 같은 종파에 더 충성을 하기도..

수니파와 시아파
모하메드가 632년6월8일 메디나에서 갑자기 죽었을 때 모슬렘 사회는 커다란 지도력의 위기에 봉착했었다. 모하메드는 후계자 지명에 대해 어떤 지침도 남기지 않았다. 모하메드가 마지막 예언자였으므로 새로운 지도자는 '예언자'라고 불릴 수 없었다. 그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알라로부터 새로운 계시가 올 수 없었고, 모슬렘은 코란과 하디스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모하메드의 장례가 준비되던 때 매우 중요한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이슬람교가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하므로 초기의 모슬렘 사회에서는 종교와 정치간의 구분이 없었고, 각 지역의 세속 정부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메카에 있는 모슬렘과 메디나에 있는 모슬렘 간의 싸움의 주요 원인이 되었고, 두 그룹 모드 자신들이 진정한 후계자라고 주장하였다.
메카의 모슬렘들은 모하메드와 가장 친하고 가장 신뢰받는 친구인 아브 바크르를 선택했고, 그는 칼리팟 아술 알라(하나님의 사자의 후계자)라는 이름을 얻었고, 첫 번째 칼리프가 되었다. 아부 바크르는 이슬람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이것은 이슬람교의 수니파가 지지하는 철학이다. 그러나 메디나의 모슬렘들은 모하메드가 자신의 사위인 알리를 후계자로 남겼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모하메드의 딸인 파티마와 결혼한 알리는 선거 과정을 통해 선출되었다. 알리와 그의 지지자들은 바르크의 후계자 임명에 반대하였고, 결국 이슬람교의 시아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시아파는 이슬람교가 인간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신의 계시이므로 지도자가 종교적 권위를 가져야 된다라고 느꼈다. 수니파 이슬람은 코란이 최종적인 계시이고 더 이상 이에 첨부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더 정통파로 인정되었다. 시아파 이슬람은 이맘이라고 부르는 종교지도자를 믿고, 그가 신의 계시를 더 받아 코란에 덧붙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결과 시아파 이슬람은 더욱 극단주의적이라고 여겨진다. 지도력의 문제는 모든 모슬렘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스마렐리스, 무피, 알라위, 샤피, 하니피리 등등의 많은 분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모든 모슬렘은 동일한 근본적인 가치관을 믿지만 이러한 가치관은 지역과 분파에 따라 많은 다름 관습과 의식에 의해 표현된다.
모슬렘 해의 시작은 무하람이라고 불리고 이는 거룩한 달이라는 뜻이다. 시아파 모슬렘들은 이 달 알리의 아들이자 모하메드의 손자인 후사인과 후사인의 아들 카심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한 애도의 시간으로 지킨다. 무하람 월의 7일부터 10일까지 그 비극적인 사건의 낭송과 젊은이들이 날카로로운 칼로 피가 흐르기까지 자신을 치면서 행진하는 의식들이 행해진다. 수니파 모슬렘 또는 이 의식을 거행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칼로 치지는 않는다. 사이파 모슬렘 순교의 구속적인 성격을 더욱 강하게 믿는다. 기도 중에 시아파 모슬렘은 그들의 손을 옆구리에 살짝 댄 체로 기도한다. 여자들은 시아파나 수니파나 그들의 손을 가슴에 댄다.♡

 

 

힌두교, 유대교, 불교, 크리스트교와 함께 세계 주요 종교 중 하나로 꼽히는 이슬람교는 1천4백년 전에 아라비아에서 시작됐다. 이후 급속한 성장기를 거치며 철학, 문학, 예술, 과학, 의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치는 종교가 됐다. 오늘날, 이슬람교 인구는 전세계적으로 약 11억 명에 이르며 국적도, 신봉하는 이슬람 전통도 매우 다양하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CSU) 스태니슬로스 분교, 정치학과 아즈아드 아부크하릴(As'ad AbuKhalil) 부교수는 대다수 서구인들이 이슬람교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이슬람교도들은 실망한다고 전했다. 그는 중동과 이슬람 문제 전문가이다. 아부크하릴 교수는 "언젠가 UC버클리대 학생들에게 '오사마 빈 라덴을 아는가'라고 물었더니 모두들 손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아랍이나 이슬람교도 작가, 시인, 조각가, 노벨상 수상자의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라고 다시 물었다. 이것이 공평한 일인가? 빈 라덴의 추종자들은 작은 교실 하나에 다 몰아 넣을 수 있을 만큼 적다. 그러나 서방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슬람교도는 바로 빈 라덴이다."

아부크하릴은 빈 라덴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슬람을 왜곡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빈 라덴과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

"광신도만을 보고 전체 이슬람교도들을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 서구 사람들은 이슬람교도가 유대교나

크리스트교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슬람교도들도 항공기 납치나 테러리즘이 아닌 예배드리는 것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을 믿는다."

이슬람교의 핵심 가르침은 아랍 이름으로 '알라'라고 불리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랍어로 이슬람이란 신의 뜻에 "맡긴다" 혹은 "복종한다"는 뜻이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예언자 마호메트는 A.D. 570년 메카에서 태어나, 622년 메디나에 정착했다. 이슬람교도들은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 많은 예언자를 믿는데 마호메트를 마지막에 온 가장 중요한 예언자라고 생각한다.

이슬람교도의 경전 코란은 "시대를 초월한 신의 말씀"이란 뜻이다. 오주(五柱)라고 알려진 이슬람교도들이 실행해야 할 중요한 다섯 가지 의무는 예배, 신앙고백, 단식, 성지 순례, 자선 기부 등이다.

이슬람교에는 두 분파가 있는데 하나는 수니파(Sunnism)이고 다른 하나는 시아파(Shi'ism)이다.

 

이슬람교 수니파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수니파 이슬람교도 여성. (AP)

수니파는 전세계 이슬람교 대부분이 지지하는 분파다. 이들은 최초의 종교적 지도자 혹은 칼리브 네 명을 예언자 마호메트의 정당한 후계자라고 믿는다.

수니파의 이름은 "길"이라는 뜻을 가진 '수나'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지어졌다. 수나란 예언자 마호메 트의 생활을 본보기로 삼는 생활지침이다. '하디스'라고 알려진 마호메트의 가르침과 실천을 기록한 서적을 코란의 보완서로 인정한다.
수니파에는 하니피, 말리키, 샤피, 한바리라는 사법학파(四法學派)가 있다. 이슬람 사법체계는 수 백년 전에 코란과 하디스를 해석하기 위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수니파 이슬람교 신자들은 주류에 속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내전으로 주목을 받게 된 두 소수 수니종파도 있다.
와하비즘(Wahhabism)데오반디즘(Deobandism)을 클릭하면 설명을 볼 수 있다.

 

와하비즘


사우디 아라비아 파드 국왕 (AP)

이슬람 원리주의 혹은 이슬람 청교도주의라 불리며 18세기 사우디 왕가의 지원을 받은 모하메드 이븐 압둘라 와하브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처음 창시했다.

와하비즘은 이슬람교 초기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니 한발리 이슬람법 학교의 한 분파로 코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며, 어떤 형태의 신비주의도 배격한다. 오늘날의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슬람교 와하비즘의 총 본산으로 현 사우디 왕실도 이를 신봉하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엄격한 남녀차별을 근간으로 여성의 운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와하비즘의 군사극단주의를 대표한다.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빈 라덴은 젊은 시절 소비에트의 침공에 맞서는 아프가니스탄을 돕기 위해 참전한 바 있다.

 

데오반디즘


탈레반의 이슬람법 해석에 따라 아프간 여성들에게는 교육이 금지된다. (AP)

데오반디 운동은 1800년대 중반 영국식민지하의 인도에서 발전됐다.

수니 하나피 이슬람법 학교의 한 분파로 인도 히말라야 지방의 데오반드 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 데오 반드는 마드라사 종교학교가 위치한 곳이다. 데오반디 운동은 이슬람교도들을 하나로 묶기 위한 개혁을 지향하며 반식민주의, 반근대주의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데오반디 운동은 파키스탄이 인도와 분리된 후 파키스탄에 새 근거지를 마련했다.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한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 탈레반은 데오반디즘 급진파에서 갈라졌다. 탈레반은 데오반디즘과 파슈툰족의 전통을 결합시켰다.
탈레반의 율법은 현대세계와의 오랜 단절과 소비에트 침공, 그 후 이어진 내전 끝에 형성된 것이다.
탈레반의 이슬람법 해석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돌팔매질에 의한 공개처형과 손·발목의 절단, 여성에 대한 교육금지 등이 시행되고 있다.

 

시아파


모하마드 카타미 이란 대통령과 이란 테헤란의 이슬람 성직자들 (AP)

수니파가 최초의 칼리프 네 명 모두를 예언자 마호메드의 정통 후계자로 보는데 반해 시아파는 네번째 칼리프인 알리와 그 자손만을 마호메드의 후계자로 인정한다. 시아파는 수니파가 받아들인 하디스(코란의 보완서)를 인정하지만 전부를 받아 들이지는 않는다. 시아파는 또한 시아파만의 하디스를 갖고 있다. 예언자 마호메트가 사망하고 몇 십년이 지나지 않아 수니파와 시아파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후 기나긴 긴장과 갈등의 역사가 지속됐다. 두 종파는 주로 지도 방법에 관해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시아파는 이란의 공식 종교다.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로는 이라크, 바레인, 레바논 등이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다른 많은 국가에도 시아파가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시아파는 주로 이란과의 국경 지대인 아프간 북서부 지방에서 살고 있는 하자라족 출신이다.

 

지하드란?


한 이슬람교도가 정오 기도시간에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리고 있다. (AP)

 

지하드는 문자 그대로 "투쟁"을 의미한다. 이슬람교에서 지하드는 안과 밖의 투쟁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안으로의 지하드는 더 나은 사람, 더 충실한 이슬람 교도가 되기 위한 개인적 투쟁이다. 밖으로의 투쟁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투쟁에서 불의와의 싸움 등 어디든 적용될 수 있다. 워싱턴 조지타운 대학에서 이슬람교 역사 및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관계에 대해 가르치는 이보니 하다드 교수는 "이슬람교의 믿음이 박해받을 때 싸움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녀는 코란이 비(非)이슬람교도에 대한 폭력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코란은 오직 방어적인 목적으로의 폭력만 권장할 뿐이라는 것이다.
9월 11일의 테러공격과 오사마 빈 라덴의 '성전' 주장은 지하드의 원래 뜻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CSU) 스태니슬로스 분교, 정치학과 아즈아드 아부크하릴(As'ad AbuKhalil) 부교수는 말한다. 아부크하릴 교수는 "(지하드는) 이슬람교와 아랍세계를 둘러싼 군사환경이 빚어낸 정치적 조건과 더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파트와란?


이슬람교 교리 학교에 출석한 학생들. (AP)

파트와는 이슬람법 집행부에 의해 인정된 종교적 선언, 판단이다. 파트와는 아주 간단한 일상생활에서 부터 심각한 문제에 까지도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언자 마호메트가 지구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환경문제가 이슬람교와 이해를 같이해야 한다는 파트와가 최근 레바논에서 발표된 바 있다. "파트와는 언제나 발표될 수 있지만 서방언론의 관심을 끌 때는 뭔가 위험하거나 위협이 되는 때일 뿐"이라고 조지아 대학 종교학부 이슬람교 담당 교수 알란 고드라스는 말한다. "오사마 빈 라덴이 1998년 이슬람교도이든 아니든 모든 미국인들이 죽어야 한다는 파타와를 발표했을 때 물라 오마르(탈레반 수장)는 빈 라덴에게 파타와를 선언할 권리가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빈 라덴이 이슬람 법학교를 수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물라 오마르가 빈 라덴이 최근 말하는 바에 대치되는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고드라스 교수는 덧붙인다.
"전통적으로, (파타와를 선언하는) 개인의 지위는 이슬람교 교육을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에 달려 있다. 언론의 집중조명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Copyright ⓒ Jin Haogen & Pei Xiujing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