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1>이슬람은 평화를 원한다
■쿠웨이트 사랑방 '디와니아'서의 논쟁

"빈 라덴 무슬림이라면 테러 못 일으키고
테러리스트라면 폭력조직의 수괴일뿐"

911 테러 이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이슬람’ 은 새해에도 국제 무대에 길게 꼬리를 드리울 전망이다. 미국의 대 테러전쟁이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한 관심도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여파를 따지는 일일 수 있다. 분노와 좌절, 빈곤에서 나오는 공격성이 테러를 낳는다는 논평들이 무수했지만 전세계 인구의 20%인 13억명이 살고 있는 이슬람권에 반미와 반 서방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 그럴까. 기독교, 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인 이슬람교는 무엇을 말하는 종교이며 이들 민족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슬람권 현장을 심층 취재, 각국의 모습과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의 통칭)들의 일상 생활,의식구조 등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 편집자주

 

<1> 이슬람은 평화를 원한다

쿠웨이트의 ‘디와니야’ 는 우리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남자들끼리 모여 부담 없이 세상 얘기를 주고 받는 전통적인 만남의 장이다. 지난달 15일 저녁 무렵 찾은 쿠웨이트 시티의 한 디와니야. 사람들은 한창 논쟁을 벌이고있었다. 최대 화제거리는 미국이 911 테러의 주모자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이다. 한 사람이 “빈 라덴은 충실한 무슬림” 이라고 주장하자 즉각 “그는 테러리스트” 라는 반박이 오갔다. 어떤 이는 “이슬람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빈 라덴이 테러 이후 이슬람 문명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논란을 빚는 자체가 혼란스럽다” 고 했고 다른 남자는 “문명의 충돌을 얘기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급박하고 충격적” 이라고 털어 놓았다. 한동안의 논쟁 끝에 결론이 나왔다. 이들은 빈 라덴이 무슬림이라면 절대 테러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테러리스트라면 이슬람을 모르는 폭력 조직의 수괴일 뿐이라는 쪽으로 입을 모았다. 이구동성으로 어떤 경우든 이슬람과 테러를 결부시킬 수 없다는 게 이들의 확신이었다. 경고도 이어졌다. 미국의 일부 세력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이라크 등 이슬람 국가들로 전선(前線)을 확대할 경우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우리에게 이슬람은 911 테러 이전까지는 생경한 말이었다. 이슬람하면 흔히 테러, 여성 억압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기독교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믿듯 이슬람교는 마호메트를 통해 알라에 귀의하는 종교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은 중동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중국 일부,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동 유럽까지 퍼져있다. 이슬람은 순종과 평화를 뜻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테러 대 참사와 아프간전쟁을 기독교와 이슬람 간 ‘문명의 충돌’ 이라고 보는 시각은 이슬람 세계에서는 상식 밖으로 간주된다. ‘충돌’ ‘대립’ ‘살인’ 등은 이슬람 율법의 본령과 완전히 배치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에는 폭력을 미화하는 대목이 없다. 무슬림들은 코란에 따라 절대 인명을 해치지않는다. 쿠웨이트 최대 사원인 그랜드 모스크의 행정 부부장 모하메드 알_메테브(46)는 “미국은 무슬림과 아랍을 착각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그는 “무슬림들은 절대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고 강조했다.

쿠웨이트 국립대학 이슬람대 학장 모하메드 알_탑타바이(34) 교수는“지하드(聖戰ㆍ성전)는 모든 사람에 이로움이라고 확신할 때 오직 국왕 만이 선포할 수 있는 것” 이라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미, 대 서방 지하드를 추종하는 세력은 거의 없다” 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종교성의 모하메드 라셰드 빈 다르(36) 모스크 담당 부장은“무슬림들은 자신의 양 어깨에 항상 천사가 내려앉아 있다고 믿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단식과 절제, 관용의 이슬람이 미국에 대한 테러의 배후라는 주장에 무슬림들이 놀라움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고 지적했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라마단은 무슬림 규율·생활철학

”라마단을 보면 이슬람을 이해한다.”

이슬람력으로 아홉번째 달(11월 16일~12월 15일)인 ‘라마단(금식월)’. 이 종교행사가 갖는 의미는 서방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낮 시간 동안 단식하는 한달 남짓한 이 기간은 무슬림들의 모든 일상을 지배하는 규율이자 생활 철학이다. 무슬림들의 하루 근무시간은 아침 7시에서 오후 3시까지. 그러나 라마단 중에는 출근시간이 9시로 늦춰진다. 일하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고, 식사를 안 하다 보니 “대충 졸다가 퇴근한다”는 게 서방의 대체적인 이미지지만, 실상은 다르다. ‘마그립(Maghrib)’이라는 하루 5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기도가 끝나고 ‘이프타르(Iftar)’ 라는 첫 식사로 시작되는 저녁시간 동안 소비는 비(非) 라마단 때보다 더 늘고 세계 각국은 라마단 특수를 잡기 위한 마케팅 전쟁을 벌인다. “배고픈데 일의 능률이 오르겠느냐”는 생각은 “이들이 하는 단식은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하나의 습관”이란 설명을 듣는 순간 단견임을 깨닫게 된다. 두바이 시내 유명 쇼핑몰인 ‘시티 센터’에서 안내를 맡고 있는 필리핀 출신의 미라 아그푼(여)은 “라마단 중에는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문을 여는데, 낮에는 기독교인 등 외국인이, 밤에는 무슬림이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이슬람 율법의 5 기둥(pillar) 중 하나인 라마단 단식은 절제 이상의 뜻이 있다. 배고픔을 경험해 없는 자의 고통을 체험하라는 것이며, 단식과 함께 담배를 끊음으로써 나쁜 버릇을 고치고 건강한 삶을 살라는 애민사상이 담겨 있다. 낮 시간 동안 섹스를 금하는 것은 ‘인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짐승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수양의 의미이다.
라마단 29일째 되는 날, 여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재산 2.5%를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는 ‘자카드’ 란 행사가 열린다. 라마단에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 5번 기도하라는 계율 역시 게으르면 때맞춰 기도할 수 없으니 그만큼 부지런해서 부자가 되라는 실천적 사상을 담고 있다. 경건하고 엄숙한 낮 시간대와 달리 밤 12시까지 교통체증이 빚어질 정도로 북적대는 밤시간은 이슬람의 친철과 관용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가족은 물론, 잘 모르는 이웃과도 '칼람(Kalam)' 이라는 일상대화를 나누며 유대감을 확인하는 자리다.

현지 아랍인이 매일 혹은 매주 자신의 집 한 부분을 아무 제한 없이 외부인에 개방하는 ‘디와니야’는 라마단에만 국한되는 전통은 아니지만 라마단의 개방적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비(非) 라마단에는 대개 아침부터 낮 1~2시까지, 라마단 중에는 밤 7시부터 새벽까지 계속되는 디와니야는 낯선 사람도 부담 없이 세상얘기를 주고받으며 누구든 서로 친분을 쌓는 만남의 장이다.

‘핀잔(Finjan)’ 이라는 아라비아풍의 커피와 담배, 과자 등을 앞에 놓고 얘기 꽃을 피우다 밤 11시가 넘어 양 고기가 곁들인 푸짐한 저녁상이 들어오면 분위기는 절정에 달한다. 쿠웨이트의 한 디와니야에서 만난 알리 알와히드아(42ㆍ공무원)는 “한밤중에 낯선 사람 대접하기 위해 대문 활짝 열고 자신의 집을 개방하는 것은 서방에서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 것” 이라고 말했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2> 석유는 알라의 축복인가
"검은 황금 이후를 대비한다"

“중동의 석유 공장은 알라만이 안다.”
석유시설에 대해 광적이다 싶을 정도로 집착하는 보안을 빗댄 말이다.
이 때문에 상대 국가나 업체로부터의 불평과 불만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석유가 유일한 돈줄이자 사실상 국가의 전부나 다름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이들의 태도를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중동의 석유관련 시설은 모두 국가가 운영하고 있다.
아부 다비 국영석유회사인 애드낙(ADNOC), 쿠웨이트석유회사(KOC), 쿠웨이트국영정유회사(KNPC)등의 당국자들과는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만날 수 없고, 내부는 물론 인근 지역에서 사진조차 찍을 수 없다.
적발될 경우 카메라를 압수당하고 간첩으로 몰려 처벌 될 수 있다.
정유와 원유 수송과 관련, 현지 업체와 합작하는 외국 석유 및 건설업체라 하더라도 시추 공장 등 핵심시설에는 아예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다.
쿠웨이트서쪽 걸프해에 위치한 ‘알-아흐메디’ 최대 국영 정유공장.
석유시설이 아닌 내부 부두공사 현장에 들어가는데도 ‘게이트 패스’ 라는 비자(사증)에다 서너 차례 금속탐지기를 거쳐야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
대공포, 레이더가 곳곳에 배치돼 있고 군인들과 정ㆍ사복 차림의 보안요원이 즐비해 마치 군기지를 연상케 한다.
알-아흐메디 정유 공장에서 부두 접안시설 공사를 하고 있는 현대건설의 양형기 부장은 “우리가 맡은 공사현장이지만 매일 출퇴근하는게 비행기 타는 것보다 더 어렵다” 고 말했다.
중동하면 연상되는 석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사막에서 터져나오는 석유는 중동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 주었지만 영원한 풍요의 상징은 아니다.
언젠가 고갈될 수 밖에 없고, 또 불가피하게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채굴 비용 등 미래의 어두운 그림자가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수 만 달러에 달하는 국민소득, 경제ㆍ사회 구조가 석유를 중심으로 획일적으로 연동된 사회에서 석유의 고갈과 수입 감소는 국가존속 여부와도 직결된다.

이라크, 쿠웨이트와 함께 100년 이상 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알라의 선물’ 인 석유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가장 처절하게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에미리트(토후국)일곱 개가 느슨한 연방제를 이루고 있는 UAE 제2의 도시이자 자체가 한 국가인 두바이는 일찌감치 물류와 제조업으로 승부를 걸었다.

UAE 하루생산량 200여만 배럴 중 10만 배럴에도 못 미치는 매장량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매장량과 관련, 크고 작은 고민에 시달리고 있는중동 각국에 두바이는 국가 미래 전략의 한 전형이다.

제조업이 전무한 현실에서 무역만이 살길이라는 지상명제를 안고1981년 세워진 중동지역 최대 컨테이너항인 ‘제베랄리 자유무역지대’.

세계에서는 7번째 규모인 이곳의 고용인력은 7만 5,000여 명으로 이중4만 명은 지역 내 상주 인구이다.

100㎢가 넘는 광활한 땅에 세계 1,800여 업체가 입주해 있다. 규모도 규모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베랄리를 ‘제2의 유전’ 으로 만들려는 의지이다.

시설 경호를 맡고 있는 인도 출신의 라술 유수프(63)는 “UAE 전역에서 라마단(금식월)의 규율이 적용되지않는 곳은 이곳 뿐” 이라고 말했다.

이슬람력으로 가장 성스러운 달, 코란이 적은 대로 금식과 절제를 엄격히 요구하는 라마단 조차 희생시킨다는것은 과거에는 어떤 이유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항구 부소장 하산 A 하산(38)은 자유무역지대에서 30%를 차지하고 있는 제조공장을 자랑했다.

항구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제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른 물류항구에서는 보기 힘든 공업지대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두바이의 변신에는 UAE 수도이자 석유매장량의 90% 이상을 담당하는아부 다비와의 정치적 타협도 한 몫하고 있다.

돈이 없는 두바이는 아부 다비의 국왕(셰이크)에 연합국의 대통령 자리를 종신 보장하고 자신의 셰이크는 부통령 겸 총리로 내려앉는 정치적 손해를 감수한 대신, 재정 및 프로젝트 비용을 지원 받는 ‘윈윈 전략’ 을 구사했다.

320만 인구 중 3분의 2를 차지하는 아부 다비로서도 느슨한 연합체가 갖는 정치적 불안을 해소하고 맏형 노릇을 보장 받는 점에서 손해 볼 것 없는 거래였다.

지난해12월 2일 대대적으로 열린 연합결성 30주년 기념식에서 아부 다비 국왕인 셰이크 자예드(84)는 2000년 미국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을 정도로 나빠진 건강에도 불구, 연합국 대통령으로서 7선에 성공했다.

고속통신망을 갖춰놓고 IT(정보통신) 업계 유치를 위해 지난해 4월단지를 조성한 ‘두바이 인터넷 시티’ 는 21세기를 발 빠르게 맞이하려는 두바이의 한 단면이다.

1930년대 석유가 처음 발견된 바레인에서 걸프전 이후 쿠웨이트를 거쳐 중동의 관문으로 자리잡은 두바이는 중동 석유의 브랜드로서 ‘두바이유’ 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처럼 석유가 없어도 중동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걸프전 이후 중동의 관문 자리를 두바이에 내준 쿠웨이트 역시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치열하다.

“석유만 믿어서는 안 된다” 는 정부의 달라진 의식을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국가가 모두 책임졌던 전기, 수도세등 공공요금을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바꾸고, 재정적자의 주범이었던 의료ㆍ교육비도 과감히 축소했다.

석유 없는 미래의 자손들을 위해 매년 국민총생산(GNP)의 10%를 ‘차세대 기금’ 으로 적립하고 있다.

세금이라는 개념조차 희박한 국민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지만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중동에는 UAE 국왕이 살 길이 막막했던 나머지 인도 국왕을 찾아가 인도의 한 주(州)로 편입시켜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 당한 일화가 전설처럼 회자된다.

“사막밖에 없는 땅은 필요 없다” 는 게 당시 인도 국왕의거절의 이유였다.

이후 사막에서 석유가 무진장 쏟아져 나오자 이 소식을 들은 인도 국왕은 땅을 치고 후회했다는 것이다.

이런 중동이지만 각국은 석유의 보고가 사막으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의식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았던 빈 라덴이 테러 이후 이슬람 문명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논란을 빚는 자체가 혼란스럽다” 고 했고 다른 남자는 “문명의 충돌을 얘기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급박하고 충격적” 이라고 털어 놓았다. 한동안의 논쟁 끝에 결론이 나왔다.

이들은 빈 라덴이 무슬림이라면 절대 테러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테러리스트라면 이슬람을 모르는 폭력 조직의 수괴일 뿐이라는 쪽으로 입을 모았다. 이구동성으로 어떤 경우든 이슬람과 테러를 결부시킬 수 없다는 게 이들의 확신이었다. 경고도 이어졌다. 미국의 일부 세력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이라크 등 이슬람 국가들로 전선(前線)을 확대할 경우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우리에게 이슬람은 9ㆍ11 테러 이전까지는 생경한 말이었다. 이슬람하면 흔히 테러, 여성 억압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기독교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믿듯 이슬람교는 마호메트를 통해 알라에 귀의하는 종교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은 중동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중국 일부,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동 유럽까지 퍼져있다.

이슬람은 순종과 평화를 뜻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테러 대 참사와 아프간전쟁을 기독교와 이슬람 간 ‘문명의 충돌’ 이라고 보는 시각은 이슬람 세계에서는 상식 밖으로 간주된다. ‘충돌’ ‘대립’ ‘살인’ 등은 이슬람 율법의 본령과 완전히 배치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에는 폭력을 미화하는 대목이 없다. 무슬림들은 코란에 따라 절대 인명을 해치지않는다. 쿠웨이트 최대 사원인 그랜드 모스크의 행정 부부장 모하메드 알_메테브(46)는 “미국은 무슬림과 아랍을 착각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그는 “무슬림들은 절대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고 강조했다.

쿠웨이트 국립대학 이슬람대 학장 모하메드 알_탑타바이(34) 교수는“지하드(聖戰ㆍ성전)는 모든 사람에 이로움이라고 확신할 때 오직 국왕 만이 선포할 수 있는 것” 이라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미, 대 서방 지하드를 추종하는 세력은 거의 없다” 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종교성의 모하메드 라셰드 빈 다르(36) 모스크 담당 부장은“무슬림들은 자신의 양 어깨에 항상 천사가 내려앉아 있다고 믿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단식과 절제, 관용의 이슬람이 미국에 대한 테러의 배후라는 주장에 무슬림들이 놀라움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고 지적했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3> 무슬림, 율법에 따라 산다

손님에게 집안·아내공개 금기시

아랍인들은 외부인에게 자신의 집을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 특히 방문객이 무슬림이 아닌 경우 더더욱 그렇다. 서로 어울리기 좋아하고 관용과 친절의 가치를 생활화하고 있지만, 나이나 재산, 부인 등 개인의 신상에 관한 것은 서양보다 더 철저히 화제로 올리는 것을 피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얼마든지 동등한 친구가 될 수 있는 문화, 여자를 가급적 감추려는 문화에서 비롯된 관습이다. 이들의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한 아랍인의 주택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여러 차례의 요청 끝에 어렵게 받아낸 허락이었지만 자신 외 집안의 어떤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눠서도 안되고, 여자들이 있는 본관에는 들어서지 않는다는 조건이 달린 채였다.

27년 공직생활 아다부이씨 가정 방문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중ㆍ상류층이 살고 있는 주택들은 석유로 얻은 부의 풍요로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살고 있는 두바이 시내의 알_맘제르 지역은 다른 주택가와는 달리 잘 포장된 도로에 하얀 색으로 깨끗하게 단장된 고급 2층 주택들이 길 양쪽에 질서 정연하게 줄 지어 서 있었다. 길 한쪽에 세계 최고급 승용차들이 빽빽이 주차해 있고 지붕에는 위성방송 수신용 접시형 안테나가 촘촘했다. 이곳에서 UAE 교육부에서 27년간 재직하면서 두바이의 가장 번화한 지역 중 하나인 데이라(Deira)의 지역교육 총책임자인 압둘라흐만 알다부이(44)씨의 집을 방문했다. 정문을 들어서자 3~4개 동(棟)은 됨직한 여러 채의 2층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알다부이씨의 안내에 따라 먼저 손님을 맞는‘게스트룸’으로 들어섰다. 남자용, 여자용 방이 따로 있다고 했으나 여자용 방은 취재가 허락되지 않았다. 사방으로 코란을 비롯, 역사ㆍ종교 서적들이 서가에 가득 꽂혀있고, 한 쪽에는 TV와 간단한 찻잔, 식기 등이 준비돼 있다.

손님 음식을 차리는 조그만 부엌을 지나면 옆 방이 하인들이 사는 곳이다.2층 침대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 두개의 방에 기거하는 이 집의 하인은 여자 6명, 남자 7명 등 모두 13명. 모두 동남아와 서남아 출신이다. 사랑방,하인용 방이 있는 건물과 가족들이 있는 본관 건물로 가는 길 중간에는 외부인의 접근을 막기 위한 대형 칸막이가 둘러쳐 있다. 본관 건물을 한사코 공개하기를 꺼리던 알다부이씨는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하고 외부를 안내했다. 양쪽이 똑 같은 대칭 모양으로 된 2층 건물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똑 같은 형태로 두개가 나 있고, 2층 창문, 지붕 모양까지 똑같다. “아내가 두 명인데 코란의 율법대로 모두 평등하게 대하기 위해 건물 모양까지 똑같이 만들었다” 는 설명이다. 한쪽 문은 첫째 부인이, 다른 문은 둘째 부인이 각각 출입하는 곳이다. 그는 “지금은 서방의 영향을 받아 이 동네의 95% 이상이 아내를 한 사람만 두고 있지만, 아내가 둘 이상인 경우는 대부분 집모양이 이런 형태”라고 말했다. 첫 부인에게서 3명, 둘째 부인에게서 7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그는 “BMW, 랜드 크루저, 벤츠등 승용차는 5대이고 재산은 대략 150만 달러 정도 될 것” 이라고 추정할 뿐 정확한 규모는 알지 못했다. 알다부이씨가 누리는 것은 비단 돈 만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가 UAE 최초의 이슬람 학자였고, 자신은 교육부에서 수 십년을 봉직한 인연으로 국가로부터 젊은이들의 결혼을 성혼시킬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았다. 젊은 남녀가 그의 허락을 받기만 하면 법원에 가서 부부로서의 ‘절차’ 를 밟지 않고도 합법적인 부부가 될 수 있다. 알다부이씨가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젊은이는 매달 20쌍 정도. 지금까지 300쌍 이상이 그의 손을 거쳐 부부가 됐다.

물론 아랍인만이 그에게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다. 결혼을 성사만 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결혼해서는 안될 것 같으면 양쪽 집안을 찾아 다니며 성혼을 반대하는 설득도 벌인다. 남자가 술주정뱅이거나 마약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반대하는 주된 이유이다. 그는 “내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겠다고 고집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알다부이씨와 같은 예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 중 상당수 아랍 토착민들은 이같이 국가로부터 일정 부분의 ‘공권력’ 을 부여 받아 지역사회의 ‘어른’ 역할을 하고 있다. 맞은편에 살고 있는 살라 살렘 알키와니(35)의 집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나무에 관심이 많다” 는 그는 한 쪽에 널찍한 정원을 만들어 세계 각국의 희귀종 식물과 나무를 수집하고 있다. 스페인, 태국, 아프리카 등 원산지가 30개국이 넘고, 여기에 들어간 돈은 자신도 잘 모른다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정보통신 분야를 공부한 그는 지금 미국의 한 첨단장비업체 회장직을 맡으면서 두바이에서는 인도_UAE상공회의소 의장, 시청 자재담당 부장 등 다양한 명함을 갖고 있다. 부인은 아직 한 사람 뿐이지만 돈을 더 벌면 한 사람 더 맞이하고 싶다는 그는 “911테러 때문에 뉴욕 증시가 폭락해 주식에서 많은 손해를 봤다” 며 웃었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아랍인의 결혼생활
'多妻'에는 합당한 명분 있어야

중동지역의 일부다처제 관습에는 나름의 엄격한 원칙과 규율이 있다. 서방에 표면적으로 알려진 것과 는 다르다. ‘성차별’‘전근대적인 사고방식’ 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으나 코란의 율법을 따르는 결혼문화는 서방의 잣대로 재단하고 규정할 수 없는 이슬람 문화의 무게가 실려 있다. 아랍남성은 코란에 따라 부인을 최대 4명까지 둘 수 있다. 그러나 둘 이상의 아내를 얻으려면 이에 대한 합당한 이유와 명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코란은 기본적으로 모든 부인을 평등하게 대우할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같이 살고 있는 부인의 허락과 설득이 우선되지 않으면 남편은 임의로 새부인을 들일 수 없다. 부인도 남편이 새 부인을 맞이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반대하지 않고 이렇게 해서 가족이 된 남편의 새 부인에게는 질투의 감정을 품지 않는다.

살라살렘 알키와니(35)씨는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성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옆집, 혹은 아는 집의 아내가 남편을 잃었을 경우 합법적으로 새아내를 맞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망인을 맞아들이는 것은 남자가 여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전통을 따른 것이지만, 지금은 정부가 이를 더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미망인이나, 아버지를 잃어 생계수단을 잃은 여성에게 월 2,000달러의 생계비를 보조해야 하는데, 새 남편을 맞이할 경우 정부는 이런 재정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부인으로 들어오면 첫번째, 두 번째에 관계없이 모든 부인들은 철저히 평등하게 대우 받는다. 돈에서부터 육아, 심지어는 잠자리 횟수까지 균등하게 대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부인은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 물론 일정기간 별거를 먼저 하고 양쪽 집안의 어른인 ‘현자(賢者)’ 가 최대한 설득하지만 일단 이혼이 결정되면 남편은 육아비 등 엄청난 위자료 때문에 ‘쪽박’ 신세를 면치 못한다. 문제는 남성이 납득할만한 이유없이 단순히 성적욕망에 빠져 젊은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들이려 할 경우이다. 알키와니씨는 “집안 어른이 남자를 설득해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남편이 고집을 꺾지 않을 경우 결국은 아내가 파국을 막기 위해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막무가내로 막을 경우 코란에서 가장 큰 죄로 여기는 간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곳 결혼 풍습의 다른 골칫거리는 외국계와의 결혼을 극히 꺼리는 현지 아랍인들의 근친 결혼이다. 이 때문에 집안마다 외부에 알리기를 꺼리는 ‘문제 자녀’ 가 한 둘씩은 있기 마련이라는 게 외국계 주민들의 설명이다. 알키와니씨는“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아 불가피하게 둘 이상 아내를 얻어야 할 경우가 있다” 며 “그러나 최근에는 젊은 남성들이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한 명의 아내로 만족하고 사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4> 극단주의 뿌리는
가난·非민주화가 과격단체 낳아

“앗 살람 알라이쿰!” 우리 말 “안녕하세요”처럼 아랍인들이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주고받는 인사말은“당신에게 신의 평화(살람)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난 한 택시 운전사는 이 말의 뜻을 알려주며 “이슬람은 ‘살람’을가르치는 종교다. 우리 무슬림은 ‘살람’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수 십번씩 평화를 되뇌며 사는 무슬림들, 그들 사이에서 종교를 앞세운 폭력으로 세계 평화를위협하는 극단주의가 싹 트고 확산돼온 까닭은 무엇일까.

‘이슬람 원리주의’(Fundamentalism)로 통칭되는 이슬람 급진 세력은 이집트가 영국 지배하에 있던 1928년 독립투쟁 단체로 출범한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hood)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반 서구화, 순수 이슬람공동체 건설’로 요약되는 이들의 활동은 아랍 전역으로 급속히 번져나갔고 이후 중동전쟁에서의 잇따른 패배, 이란의 이슬람 혁명, 걸프전 등 주요사건을 거치며 극단적 폭력을 앞세운 과격단체에 이념적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집트 외무부 장관의 고문을 지낸 살라흐 바시우니 변호사는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는 이슬람 급진 세력들을한데 뭉뚱그려 원리주의 혹은 테러단체로 규정하는데 반대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원리주의의 시조로 꼽히는 ‘무슬림 형제단’은 선거를 통한 정권 쟁취로 노선을 바꾼 지 오래다. 그러나 문제는 극소수 과격 테러 단체들이 확산시켜온 극단적 반미, 반서구 이념이 평범한 무슬림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9ㆍ11 테러 여파로 관광객이 격감,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위협 받고 있는 이집트 민초들의 원망의화살은 의외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미국을 향해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카이로의 택시 운전사 모하마드(46)씨는 “무슬림을 괴롭히는 미국과 맞서 싸우는 빈 라덴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가 잡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룩소르의기념품 가게 점원 아흐메드(26)씨도 “부(富)를 버리고 무슬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빈 라덴을 존경한다”고 했다.

이집트의 최대 신문 알 아흐람의 정치전략연구소의 압델 모넴 사이트 알리 소장은 이런 여론에 대해 “팔레스타인 문제로 인한 뿌리깊은 반미 감정이 발현된 것일 뿐”이라면서 “실제로빈 라덴과 같은 극단주의자들에 동조하는 무슬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빈 라덴이 택한 테러라는 수단이 아니라 ‘무슬림을 핍박하는’미국에 저항한다는 점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모든 것을 팔레스타인 문제와 미국 탓으로 돌리는 도식화한 주장만으로 무슬림들이 느끼는좌절감과 분노,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동조 여론을 설명할 수 있을까.

정부 관계자나 보수 지식인들은 애써 부인했지만, 일부 젊은 층은 서구 언론의 지적처럼 종교에 대한과도한 집착이 비민주적 정치 상황,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출일 수 있다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을 적대시하는데는 팔레스타인 문제뿐 아니라 미국이 ‘자유와 민주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뒤로는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아랍의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위선적정책에 대한 반감도 녹아 있다.

실제로 알 카에다의 핵심 조직원들과 9ㆍ11 납치범들 대부분이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이집트와 사우디 아라비아출신이라는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집트는 현재 20년째 비상계엄 상태다. 거리마다 검은 제복에 소총으로 무장한 치안 경찰들이 깔려있다. 야당은 있지만 의석 수는 3% 남짓이고 무슬림 형제단을 비롯한 재야 세력들의 선거 참여는 봉쇄돼있다.

이집트인들 대부분은 정치 문제를 아예입에 담는 것조차 극도로 꺼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30대는 “60여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희생된 1997년 룩소르 테러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는 지지기반을 급속히 잃었는데 정부가 지나친 탄압 정책을 쓰면서 오히려 그들에 대한 동정론이 다시 일고 있다”면서 “무슬림들이 종교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것도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인 마진 샤르카위(27)씨는 “무슬림 민심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나 같은 중산층이나 일하지 않고도잘 사는 2,3%의 특권층 말고 80%에 달하는 빈곤층의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충고했다.

왜곡된 경제 구조로 인해 대물림 되는 빈곤 문제에서도 극단주의가 뿌리 뽑히지 않는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아스완의 나일강 유람선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9ㆍ11 테러 직후 실직한 자카리아스케베키(45)씨는 “빈 라덴도 싫고, 미국도 싫다”면서 “생계 걱정 없이 편안히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埃 대졸자, 체감 실업률 30%
■ 이집트 국민들 고통의 단면

지참금 없어 결혼 못한 40代 수두룩…

이집트에서 30대 초ㆍ중반의 미혼 남자는 노총각 축에 끼지 못한다. 마흔을 넘기고도 장가 못 든 남자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다. 아랍의 결혼 풍습상 남자가 집과 살림살이 일체를 장만하는 것은 물론, 신부측에 거액의 ‘마흐르’(지참금)를 줘야 한다. 이혼이나 남편이 사망하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마흐르는 통상 양가 부친이 흥정을 해 결정하는데 물가 상승에다 경쟁 심리까지 작용, 액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웬만한 회사원의 월급이 100달러 안팎, 많아야 200달러 정도여서 제 힘으로 벌어 장가 들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에이민(35)씨는 꽤 벌이가 좋다는 관광 가이드로 6년 넘게 일했지만 아직 미혼이다. 그는 “부모님과 동생들까지 돌봐야 하는 처지인데 무슨 수로 그 많은 결혼 자금을 모으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스완에서 식당 웨이터로 일하는 세이 카심(47)씨는 “짬짬이 부업도 하지만 고작 월 수입 300 이집트 파운드(80만원)로 혼자 먹고 살기에도 빠듯해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며 “결혼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이들에 비하면 지난해 8월 결혼한 에즈 엘 딘 하산(35)씨는 행운아다. 대학 교수로, 돈에 관심 없는 장인이 지참금을 마다했고 일하는 아내가 집까지 장만해왔다. 그의 표현처럼‘운 좋게’ 처가 덕을 보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이 역시 중산층 이상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최근 들어 이집트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결혼난도 갈수록 악화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가 집계한 실업률은 10% 안팎이지만 실제로는 20%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되며, 매년 대졸자의 30% 이상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나마 정부가 주식인 ‘에이쉬’(빵) 값을 통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최대 4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도록 한 ‘일부다처제’ 풍습도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먼 나라의 얘기로만 들릴 뿐이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5> 聖과俗, 공존이냐 갈등이냐
코란과 자유연애 同居 '정체성 혼란'
곳곳 접시안테나…서양 포르노문화 유입

이슬람은 무슬림들에게 종교를 넘어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거대한 규범이다. 종교를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이슬람의 정신을 지키면서도 ‘세속주의’로 가득한 세계에 과감히 문호를 여는 것은 가능할까. 이 문제는 일찌감치 개방의 길을 선택, 오랜기간 성(聖)과 속俗)의 공존과 갈등을 경험해온 이집트에서도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카이로 시내 곳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주택가마다 옥상을 뒤덮고 있는 위성방송 수신용 접시 안테나다. 고급 주택가는 물론,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낡은 벽돌집들이 즐비한 서민촌도 예외가 아니다. 한 주민은 “웬만큼 살만한 집들은 다 접시 안테나를 단다”면서 “부모들이 코란을 품에 안고‘알라’를 외치는 동안 자녀들은 유럽서 전파를 타고 온 포르노 영화에 푹 빠져있다”고 말했다. 이슬람에서는 음주를 금하지만 이집트는 ‘사카라’(맥주) ‘오벨리스크’(와인) 등 대표적 유적(지)을 상표로 붙인 술을 만들어 판다. 물론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지만, 내국인들도 내놓고 마시지는 않아도 별 제약 없이 술을 마실 수 있다. 호텔 바에서 히잡(머리쓰개)을 쓴 여성이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더러 눈에 띄었지만 눈치 주는 이는 없었다. 해질 무렵 나일강변은 데이트족들로 붐 빈다. 금기가 다름 없던 연애 결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대학생 사메흐(22)씨는 “요즘 젊은 층의 30% 정도는 연애 결혼을 하고 그 수는 점점 늘고 있다”면서 “물론 최종적으로는 부모의 승낙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교와 세속의 공존 이면에는 적지 않은 부작용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성(性) 문제다.

심각한 결혼난의 부산물이기도 한 ‘혼전 성 관계’의 증가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들어 경제적 부담탓에 결혼을 미뤄야 하는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부모 몰래 혼인서약을 하고 성 관계를 갖는 ‘우르피(Urfi) 결혼’이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10대 소녀의 임신을 다룬 영화 ‘소녀의 비밀’로 파문을 일으킨 마그디 아흐메드 알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예전에 약사로 일하던 병원에서는 매일낙태, 처녀막 재생수술이 끊이지 않았다”면서 “젊은이들은 종교와 서구 문물의 영향 사이에서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매춘도 암암리에 번지고 있다. 기자 지역서 카이로 시내로 통하는 피라미드가(街)는 걸프 석유 부국들의 부유층이 즐겨 찾는 ‘매춘거리’로 알려졌지만 당국은 매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한 현지인은 “당국도 실태를 알지만 관광산업을 고려해 눈 감아준다”고 귀뜸했다.

하지만 어두운 단면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여전히 이집트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화려한 외제 물건들로 가득 찬 아카디아 쇼핑몰에서 만난 대학생 하니(19)씨는 “놀러 다니기 좋아해 때론 기도를 게을리하지만 철저한 무슬림으로 사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옷을 입느냐는 개인적 취향일 뿐”이라며 “서양 음악과 외제 옷을 좋아한다고 신앙심이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에즈딘(35ㆍ통역 프리랜서)씨는 “흔히 ‘빈곤이 범죄를 낳는다’고 하지만 이집트는 남미보다 가난해도 강력범죄가 판 치는 남미와 달리 범죄율이 매우 낮다”면서 “이는 이슬람의 가르침이 삶의 규범으로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종교와 세속적인 삶은 아직 ‘불안한 동거’ 상태다. 숨겨져 있던 갈등이 불거졌을 때 치유책을 찾아가는 사회적 조정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일강 선상에서 ‘게이(동성애자) 섹스 파티’를 연 혐의로 기소된 23명이 최근 1~5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는 종교 모독과 악용, 코란 오역(誤譯) 등이었다. 국가가 개인의 성적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느냐는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외침은 ‘종교’의 힘에 눌려 대답 없는 메아리에 그치고 말았다. 최근 들어 진보 지식인 사회에서 코란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의 시도는 종교를 앞세운 사회적 폭력 앞에 번번히 좌절하고 있다.

저명한 여성운동가이자 소설가인 나왈 알 사아다위(70)씨는 지난해 한 극단주의자로부터 강제 이혼 소송을 당했다. 그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하지(성지순례)는 우상 숭배의 흔적이며, 코란은 여성의 베일 착용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주장, 배교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말이 왜곡 보도됐다고 해명해 간신히 승소 판결을 받아냈지만, 이 사건은 이슬람 사회 내부로부터의 변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사미르 파라그 이집트 국립문화원장은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전통과 변화가 조화된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면서 “수 천 년간 수많은 침략을 당하면서 다양한 이민족 문화의 융합을 일궈냈고 1세기 가까운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이슬람 정신과 아랍어를 고스란히 지켜낸 이집트의 저력을 믿는다”고 말했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이슬람의 '지적 産室'
97년 설립 最古대학 보유…칙령, 법에 버금가는 힘

■ 수리파 총본산 알 아즈하르

“이집트에는 알 아즈하르가 있다.” 이집트 무슬림들이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도 이슬람의 정신을 지켜갈 수 있다고 믿는다는 한 현지인은 그 근거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알 아즈하르는 971년 카이로에 설립된 첫 모스크(사원)로 출발했지만, 오늘날‘수니파 이슬람의 총본산’으로 통한다. 이슬람 세계의 지적 산실이자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인 알 아즈하르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아랍권은 물론, 동남아 유럽 등 전세계 무슬림 청년들이 이곳에서 학문을 공부한 후 세계로 나가 이슬람의 가르침을 전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슬람 교리와 샤리아(율법) 뿐 아니라 교육학 의학 공학 농학 등을 총 망라하는 종합 대학인 이곳의 교육 방식은 독특하다. 정해진 코스가 따로 없이 학생들이 원하는 셰이크(교수)를 선택해 배운다. 수업도 셰이크 주위에 학생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대화를 주고받는 자유토론 형식으로 진행된다. 진리는 스스로 찾고 체득해야 한다는 의미다.

알 아즈하르의 그랜드 이맘(최고 지도자)이 내리는 ‘파트와’(칙령)는 법보다 강한 힘으로 이집트 사회에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온건 이슬람’으로대표하는 알 아즈하르의 정치적 견해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나 진보적 지식인 양쪽 모두에서 공격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알 아즈하르는 요즘 테러리스트들로 인해 왜곡된 이슬람의 참모습을 알리는데 주력한다.‘일신교간 대화를 위한 영구위원회’ 대표인 셰이크 파우지 알 자프자프는 “이슬람의 평화와 사랑, 협력과 공의를 가르치는 종교”라고 거듭 강조하면서“일부 잘못된 무슬림들의 행동 때문에 이슬람의 교리 자체가 왜곡되고 있는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의 가르침과 믿는 자들의 행동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기독교나 유대교, 불교도들이 죄를 저지를 땐그들의 종교를 문제 삼지 않으면서 유독 이슬람에 대해서만 모든 문제를 종교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슬람은 언제든세계,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일신교와 대화하고 협력할 자세가 돼있다”면서“이스라엘이나 일부 서구 언론이 왜곡, 유포시키고 있는 거짓 선전에 현혹되지 말고 이슬람의 참모습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6> 여성들의 삶 明과 暗
■ 여권(女權)억압 근원은 종교 아닌 관습

50%대 문맹·명예살인… 삶은 '열악'
최근 정치·사회부문 격상 그나마 위안

“이슬람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나 억울하다고 느끼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적은단 한 번도 없어요.”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난 여대생 노르한(17ㆍ헬루완대 무역1)씨는 이슬람의 특성상 여성에 대한 제약이 심해 불만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펄쩍 뛰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졸업 후 의류 사업을 할 계획이라는 그는 “이슬람 만큼 남녀 평등과 여성 존중을 강조하는 종교는없을 것”이라면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극단적 여성억압 정책을 이슬람 사회 전반의 여성관으로 확대 해석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의 지적처럼 같은 이슬람 국가라도 문화 풍토나 정치상황 등에 따라 여성에 대한 대접은 천차만별이다.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집트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단 1명도 없는 여성 대사가 30 여명이나 되고, 여성 의원도 20명을 웃돈다. 4선 의원으로, 여성 최초의 상임위원장(외교위)을 지낸 릴라 타클라씨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능력만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에선 지난해 대학 신입생 중 여성이 무려 62%에 달했다. 8명의 부통령 중 1명이 여성이고, 여성 공무원 비율도 30%를 넘는다. 급여나 승진에서 차별도 없다. 승마와 영화감상이 취미라는 회사원 헤디에 해쉬민내자드(28)씨는 “직장에서나 개인 생활에서 모두원하는 만큼의 자유를 누리고 산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걸프 지역 국가들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여성에게도 신분증을 발급키로했다. 그 동안 아버지나 남편, 형제, 이들이 죽으면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의 신분증에 이름을 올려야 했던 여성들이 법적 독립 인격체로 대우 받게된 것이다.

아직도 여성의 운전을 금지할 만큼 보수적인 풍토를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카타르는 1999년 지방선거에서 여성의 선거ㆍ피선거권을 인정한 데 이어 내년 총선에서도 여성의 참여를 허용할 방침이다. 바레인도 곧 치러질 의회 선거에 여성 참여 보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가족관계 등 여성의 삶에 보다 밀착된 분야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 요르단, 이집트, 예멘 등에서는 매년 수십, 수백 명의 여성들이 ‘명예 살인’으로 죽어간다.

명예 살인이란 간통 등으로 집안의 명예를 더럽힌 여성을 남편 등 가족이 죽이는 관습으로, 살인범은 붙잡혀도 가벼운 처벌만 받는다. 요르단에서는 여성 단체가 중심이 돼 관련 법 조항 폐지운동을 수년 째 펼쳐왔지만 보수세력이 장악한 의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이슬람 국가에서는 아직도 여성이 남자 가족의 허락 없이는 해외여행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집트에서는 몇 해 전 민법 개정이 이뤄져 여성의 이혼 소송권 인정을 포함해 여성의 권리가 대폭 신장됐지만, 여성의 단독 해외여행 허용은 끝내 부결됐다.

또 여성 문맹률이 이집트 50%, 모로코 48%, 리비아 34%, 사우디 36%, 쿠웨이트 26% 등으로 다른 문화권보다 월등히 높다. 의무교육 실시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법적 결혼 가능 연령이 너무 낮아 조혼이 성행하면서 초등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악습에 맞서 싸우는 여성 운동가들은 그 원인을 이슬람에서 찾는 외부의 시각에 반대한다. 아랍여성연맹 간부인 달리아 하산씨는 “여성 억압적 관행은 종교보다는 전통과 관습의 영향이 더 크다”면서 “이집트에서 여아 할례는 이미 불법화됐고 종교 지도자들도 금지를 명했지만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여성 운동도 ‘서구화’가 아닌, 이슬람의 평등과 여성 존중 정신에 천착해 변화의 길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테헤란 타임스의 마니제흐 레자포어(29)기자는 “무슬림 여성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관습마저 자신들 문화와 다르다는 이유로여성 탄압이니 뭐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면서 “변화가 필요하다면 우리 스스로 느낄 때,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여성의 '性的도구화' 방지
■ 베일 착용의 의미와 종류

건강한 남녀관계 유도… '억압'아닌 아랍의 전통

베일 착용 관습은 이슬람의 ‘여성 억압’의 상징인가.

무슬림 여성들의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 이다.

베일은 이슬람이 태동하기 전부터 있던 아랍 전통복식의 하나로, 코란에서 “여성은 밖으로 드러난 것 외에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이지 말라”고 적시하면서 무술림 여성 옷차림의 기본으로 자리잡았다. 베일은 여성이 신체 노출로 성적 도구화하는 것을 막고, ‘외양’이아닌 ‘내면’을 중시하는 건강한 남녀 관계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베일 착용을 강제하는 나라는 사우디 아라비아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방인의 생각과 달리 오랜 관습에 따라 자연스럽게 베일을 써온 무슬림들은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을 뿐 더러 이를 억압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에 오히려 놀란다.

베일 착용이 개인의 판단에 맡겨져 30~40% 가량이 쓰지 않던 이집트에서는 최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한 서구화에 대한 견제와 반성의 의미로 베일 쓰기 바람이 번지고 있다.

베일은 지역에 따라 모양새도 다양하다. 가장 널리 쓰이는 ‘히잡’은 얼굴을 내놓고 머리에서 가슴 부위까지 늘어뜨리는 형태. 흰색 검정 등이 주종이었으나 갈수록 색과 무늬가 화려해지고 있다.

본래는 머리카락을 모두 감추고 신체 굴곡이 드러나지 않게 느슨하게 써야 하지만 요즘에는 앞머리를 살짝 늘어뜨리거나 화려한 색상의 스카프를 목 부위에서 바짝 조여 매 멋을 내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히잡에 코 아래 얼굴 가리개가 덧붙여진 ‘니캅’은 파키스탄과 모로코에서 주로 쓴다.

‘차도르’는 넓은 검은천을 머리부터 둘러쓰는 것으로 이란에서 주로 착용한다. 안에서 손으로 여미는 부위에 따라 얼굴을 내놓을 수도 드러낼수도 있다.

이란은 1979년 혁명 후 차도르 착용을 의무화 했지만 요즘에는 검은 외투로 대신할 수 있게 해 히잡에 짧은 외투를 걸치고 배낭을 둘러맨 파격적 차림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차도르나 외투 안에 발목과 종아리 일부가 드러나는 짧은 바지를 입는 패션족도 늘어 종교 경찰과 숨바꼭질을 벌이기도 한다.

‘부르카’는 눈 부분을 망사로 처리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쓰도록 한 가장 보수적인 복장으로, 아프간과 아랍 일부 지역에서 쓴다. 아프간 탈레반이 이를 강요한 탓에 무슬림 베일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낳게 한 ‘주범’이됐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이란혁명후 성차별 철폐
문화부직원 절반이 여성"


■ 이란 문화부공무원 에크발리

“최근 공무원, 엔지니어, 의사 등전문직에 진출하는 여성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이란 문화부의 공보담당 E. 에크발리(44)과장은 “이란이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여성에게 많은 자유와 기회를 주고 있는 나라”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특히 1979년 이슬람 혁명후남녀 평등과 성 차별 철폐를 헌법에 명시한 것이 여성 사회 진출의 기폭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정부 부처 중 문화부가 가장 인기가 높은데 총 직원 6,000여명의 절반 이상, 그가 속한 미디어국 직원 400여명 중 70% 가까이가 여성이다. 90일간의 출산휴가를 비롯, 각종 보험 혜택, 교육자금 지원, 정년 60세 보장 등이 공무원의 큰 매력이다.

테헤란대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후83년 문화부에 입성한 에크발리는 여성으로서는 미디어국내 최고위직.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 터키어 등 4개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는 “여자로서 특별히 차별받은 일은 없지만 집안 살림을 병행하다 보니 남자들보다 승진 기회가 적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히잡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최근에는 보수적인 공직 사회에서도 탈(脫) 차도르 바람과 함께 다양한 색깔의 히잡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7> 神政 일치와 개혁의 한계
이란…이슬람식 민주화 시험장
개혁 열망·보수회귀 양자 첨예한 대립

이슬람 국가들은 대부분 신정일치를 지향한다. 이슬람교 창시자이며 예언자인 마호메트 이후 공동체의 통치자가 종교 지도자를 겸하던 전통에 따른 것이다. 1600년 가까이 엄격한 이슬람 율법 하에서 굳어진 이러한 전통은 정치의 세속화를 막지만 때론 엄격한 통제가 뒤따르면서 개혁의 발걸음을 더디게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1979년 이슬람 혁명이후 종교의 절대성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정치체제와 발전모델을 추구해온 이란은 개혁열망과 보수회귀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현장이다.

양측은 절충점으로 종교 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종교와 민주화중 어느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상황인식과 해결방향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지난달 18일 테헤란 대학에서 있었던 상반된 성격의 두 집회는 이슬람식 ‘민주화’를 꿈꾸는 이란이 처한 오늘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학광장에서는 아야툴라 모하마드 에마미 하사니(72) 헌법수호위원회 위원의 주도로 4만 여명이 모여 반미집회를 가졌고 같은 시각정문 주변에서는 1만여 명의 교사들이 봉급인상과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사니 위원은 “최근 언론에서 체제전복을 부추기는 내용을 많이 다루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며 매우 위험하다”고 비판한 후 “이슬람 국가들이 단결하여 미국에 대항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턱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쓴 중장년으로 구성된 참석자들은 연신 주먹을 치켜들며 ‘미국 타도’를 외쳤다.

이날 집회에 자원봉사요원으로 참석한 고등학교 영어교사 함다르시(52)씨는 “최고 지도자인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의 지식, 신앙,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개혁과 민주화도 이란과 이슬람을 보호할 수 있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1980~88년 이라크와의 전쟁 때 민병대 ‘바시지’일원으로 참전했다는 그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늑대와 양이 공존할 수 없듯이 미국과는 절대 손을 잡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교사들은 경찰들과 대치한 채 낮은 보수와 열악한 교육조건에 대해 격렬히 항의했다. 21년째 근무했다는 한 여교사는 월급 봉투를 내밀며 “한달내내 일해야 50만 리얄(약 80달러)을 버는데 비해 일부 의원들은 15채의 집을 갖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렇게 된 것은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고 교육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개혁도 무의미하다“며 “언론도 이러한 우리의 요구를 전달하지 못하니 외국 기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제발 유네스코에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한 대학생은 “정치인들은 여론을 외면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교를 악용하고 있다”며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도 보수파들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은 지도층 인사들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보수적 성향인 영자 일간지 테헤란 타임스의 파르비즈 이스마일리(33)사장은 “개혁이곧 서구화나 세속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이란은 고유의 문화적, 종교적 틀에서 개혁을 이루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1979년 혁명 직전까지 유엔 주재 외교관이었던 더브드 헤르미더스 보반드(68) 이맘 서데크대 교수는 “보수파가 종교원칙에 집착하고 개혁파는 인권과 기본권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양측은 서로 부딪힐 수 밖에 없다”며 “해결책은 성직자들이 정치에서 손을 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와 개혁간의 대립이 사실 이상으로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문화부의 코시바트(45) 외국언론담당국장은 “민주화 과정에서 보수와 개혁의 대립은 자연스런현상”이라며 “교사들이 시위를 벌일 수 있고 또 폐간 되는 신문만큼 창간하는 신문도 많은 것은 큰 진전이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개혁파 의원들이 구속되고 의회가 통과시킨 외국인 투자유치법 등이 4차례나 헌법수호위원회에서 부결되는 등 보수파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또 지난해 8월 하타미 집권 2기를 시작한 이후에도 실업률이 치솟아 최근 24%에 이르고 경제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동요하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 대학교수는 “1997년 하타미 대통령 취임이후 내세운 종교 민주주의도 종교 개혁 없이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종교의식이 약해지는 30세이하가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데다 서구와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결국 개혁은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8>수니파와 시아파
1,400년 이단논쟁 결론은 '형제자매'
'시아파의 요람' 콤市 율법학교 60% 밀집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130㎞ 떨어진 콤시. 시아파의 요람이자 총본산인 이 곳은 현재 이란 전체 율법학교의 60%가 몰려있어 성직자를 배출하는 최대 산실이다. 8대 이맘인 레자의 여동생인 마수메를 기리는 시아파의 성지이며 1979년 이슬람 혁명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던 콤시에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구 80 여만 명인 이 곳에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인구가 평소보다 30% 이상 늘어난다. 마수메 사원에서 철야기도를 올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순례객들이 몰려든다. 도로마다 순례객들을 싣고 온 버스들이 줄을 이었고 시장과 모스크 주변에는 터번을 두르고 턱수염을 기른 물라(성직자)와 차도르를 쓴 여성들 이바쁘게 움직였다.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율법학교는 코란과 두꺼운 책을 앞에 놓고 토론과 강의에 몰두하는 학생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과거 탈종교 개혁을 추진했던 친미 독재자 모하마드 팔레비 왕에 맨 몸으로 항거, 이슬람 혁명을 이끌었던 주인공도 바로 이곳에서 공부하던 신학생들이었다.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1~1989)가 청년시절 공부를 하고 1960년대에는 학생들을 가르쳤던 알-호자 율법학교를 찾았다.

문화부가 정식으로 발급한 취재 허가서를 제시했지만 출입허가가 나기까지는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4층 건물에는 ‘호메이니 룸’을 비롯해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방이 있고 각 방마다 10~30 여명씩 바닥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다.

이 곳에서 4년째 공부하고 있다는 하산 솔레이(26)는“이슬람은 타 종교를 믿는 사람도 인정한다”며 “하지만 이슬람교에 진리가 있으며 무슬림들은 이를 통해 평화와 화해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마수메사원 입구와 주변 도로는 3~4만 명이 참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들은 별도의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 장방형 분수대 주변에 설치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로 손을 씻은 후 기도장소에 들어갔다.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땅바닥에 돗자리 하나 깔고 하룻밤을 지내려는 경건한 자세와 평온한 표정에서는 그들의 종교에 대한 열정과 깊은 신앙심을 읽을 수 있었다. 건물 중앙의 대형 기도실에는 이미 수 천명이 자리를 잡았고 바깥쪽 공간에도 금새 인파가 불어났다.

한 중년남성은 테헤란에서 가족과 함께 왔다며 밤새워 기도하고 아침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원주변에서 살거나 자식들이 율법학교에 들어가는 것, 또 죽어서는 근처에 묻히는 것을 최고의 소원이라고 한다.

또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가끔씩 기도회에 참석한다는 바르조네 자비푸(34ㆍ여)씨는 “콤시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신앙을 확인하고 정보를 교류함으로써 동일체 의식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시아와 수니의 차이에 대해서도 “모두 무슬림으로 형제와 자매로 생각한다”며 “중요한것은 코란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콤시무피디대의 무함마드 타키(50) 교수는 “시민들은 이슬람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앞으로도 자신들이 이슬람교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도 강하다”면서 “서구화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젊은이들의 종교의식이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걱정할 만한 단계는 아니다”고 밝혔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9> 변화속의 갈등
입헌군주제 · 여성참정권 도입 확산
석유고갈 대비 경제구조 개혁 박차

요르단 수도 암만의 밤거리에 붉은 네온 사인이 켜졌다. 오후 9시 중심가인 슈미샤니거리. 서울 명동에 해당하는 이곳에 하루밤의 낭만을 찾는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목이 좋아보이는 자리에 ‘카라아(성ㆍ城)’라는 상호가 얼른 눈에 띈다. ‘바(Bar)’라는 간판 주변에서 점멸하는 불빛이 손짓을 하고 있다. 나이트 클럽에 이어 요즘 암만에 잇달아 생겨나고 있는 접대 여성을 둔 술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라이브 노랫소리가 귀를 때린다. 아랍의 노래는 절규하는 듯 가슴을 울린다. 홀 가운데 4평 남진한 무대 위에선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키가 훤칠한 30대 여인이 마이크를 잡고 몸을 흔들고 있다.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민소매 셔츠에 하체에 딱 붙은 청바지 차림. 낮에 거리에서 목격한 ‘보통 아랍여성’들이 얼굴을 완전히 가리거나 적어도 천으로 머리를 감추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4 개의 테이블에선 비슷한 차림새의 여 종업원 대여섯명이 손님에게 술을 따르고 어울려 춤도 추고 있다.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남녀의 춤은 물론, 술을 먹고 파는 것 모두가 ‘금기’지만 이제 요르단에선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정치와 경제의 실험
대표적인 세속 국가인 터키가 아닌 다른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도 술에 대한 금기, 여성 차별로 대표되는 전통들은 구습이 되고 있다. 변화의 흐름은 국왕이 전권을 행사하는 정치 체제와 부존자원에 의존한 단순 경제 구조에서 탈피하려는 최근 움직임에서 극명하게 감지된다.

군주 일가가 전권을 행사해 온 바레인은 14일 입헌군주제를 선포하고 10월24일 총선을 치른다. 선출 의회는 걸프 연안 산유국 협의체인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 가운데 쿠웨이트에 이어 두 번째. 바레인은 한 술 더떠 여성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기로 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 등은 ‘포스트오일’ 시대에 대비해 경제구조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고 있고, 부존 자원이 부족한 요르단 같은 나라들은 정보기술(IT) 육성을 통해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경작 가능한 땅이 국토의 5 %에 불과한 요르단은 최근 북부 아질론에 실리콘 밸리를 본 뜬 IT 단지 조성 계획을 세우고 외국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2000년 기준 1인당 국민 총생산이 1,650 달러에 불과하는 등 만성적인 빈곤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이다.

IT 붐 조성은 불가피하게 사회 전반의 모습을 바꿔 놓고 있다. 국영 파스트링크와 민영 모바일 콤 등 양대 이동통신사의 경쟁으로 휴대폰 보급률은 이미 40 %에 이른다. 신 시가지인 압둔 상가의 단말기 판매점 폰 톤(PhoneTone)의 아흐메드 알리얀(20)씨는 “대학생 이상 젊은 층 뿐아니라 초등학생도 휴대폰을 사러 온다”고 말했다.

율법은 율법, 변화는 변화

자연스레 세대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친구들과 한 두 잔 술 마시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고 봅니다.” 무슬림인 요르단대 배삼 자하란(27ㆍ경제학 석사)씨는 이슬람 전통의 변화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변화일 뿐이라고 본다.

그는 “이슬람 율법이 성립할 당시에 생각할 수 없던 일이 지금 너무도 많다”며 “인터넷을 하느냐 마느냐를 어떻게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정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술집 카아란의 지배인 모하메드 노하(43)씨도 “나의신은 알라”라며 자신의 직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심 알 자우비(48ㆍ요르단대 경제학부) 교수는 생각이 다르다. 요르단 사회의 세속화를 “전통에 따라 절제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인가”라고 반문하고있다.

왕정 일체의 체제, 비판 언론 봉쇄 등의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슬람 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는 지적도 많다. 카타르의 로이터 특파원인 인도 출신의 케다르 샤르마(59)씨는 “쿠웨이트 등의선거는 가짜”라며 “언론도 대부분 100 % 정부 소유여서 진정한 자유화의 목소리는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르단 거리에서는 윤락가를 찾을 수 없는 대신 거리 매춘이 번지고 있다. 생계를 위해 국경을 넘은 이라크 여성들이 우리 돈으로 1만원도 채 안 되는 5디나르에 몸을 팔고 있는 실정이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동남아 여성들을 알선하는 매춘조직도 국경을 넘어 들어와 있다. 요르단의 에이즈(AIDS) 감염자가 200 명을 넘었다는 소식은 이슬람권의 세속화가 맞닥뜨린 부작용의 단면이다.

 

[신년특집-이슬람 이슬람] <10> '中東의 고아' 팔레스타인

실업률 60% 대로 추락
빈곤의 골 갈수록 깊어져

이스라엘 남부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 지구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 길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빈한한 삶이 그대로 묻어난다.

2차선이 대부분인 도로를 따라 20년은 넘었을 듯 싶은 벤츠 택시들이 오간다. 그 못지않게 낡은 자가용차들도 이스라엘 전투기와 헬기 공격을 받아 곳곳이 패인 도로를 덜컹거리며 자나가고 있다. 노새나 당나귀가 끄는 수레들은 아직도 이 도로의 주요한 이동 수단이다.

고삐를 잡은 청년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팔레스타인인의 현재 삶에 대한 분노, 그리고 미래에 대한절망이 읽혀진다.

도로를 따라가면 남쪽 끝에 분쟁과 테러의 도시 라파가 있다.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팔레스타인 최대의 정착촌인 라파 중심가는 매연을 뿜어내는 차량과 남루한 차림의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흙 길은 하수로에서 넘쳐난 물로 질척거렸다.

30, 40대 남자들이 한낮에도 하릴없이 길거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2년전 인티파다(봉기) 이후 이스라엘이 통행제한을 강화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다.

라파의 난민 정착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이 수시로 벌어지는 지역이다.지난 달 21일에도 이스라엘군이 무기 밀수 단속, 테러리스트 색출을 이유로 탱크와 불도저 등을 앞세워 진입, 주민 5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부상했다. 그보다 1주일 전에는 불도저공격으로 70여 채의 가옥이 파괴되고 700여 명이 집을 잃었다.

마흐무드 아부하들라(55)씨의 집도 이때 무너졌다. 27명의 대가족을 거느린그는 자치지역 바깥의 이스라엘 공장에 일을 다녔지만 이스라엘이 통행을 제한하는 바람에 실직했다. 그리고는 유엔구호활동기구(UNRWA)가 제공하는 식량에 의존해 근근히 생활을 꾸렸다.

“1시간 전에 부서진 집 근처에 가보려던 아내가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받고 도망쳐 왔습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철탑 위에 설치된 이스라엘감시 카메라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서 있는 자리에서 불과 50㎙도 떨어지지 않았다.

정착촌 내의 ‘O블록’에 거주하는 파트마 샤아트(60ㆍ여)씨는 아직 가옥은 보전하고 있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총소리를 들으며 사실상의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고말했다.

한 달에 25㎏의밀가루 지원을 받아 생계를 이어가는 그의 자녀들은 모두 9명. 모두 성인이지만 최근 UNRWA의 취업 지원 계획에 따라 3개월 시한으로 교사직을 구한 아들을 제외하면 일자리가 없다. 그나마 교사가 된 아들도 알제리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거의 6년 동안 무직으로 지냈다.

가자 지구에서 인티파다 전까지 이스라엘 지역으로 일하러 다녔던 노동자는 4,500명 선이다. 그 숫자는 지금 1,500명으로 줄었다. 분쟁이잠잠할 때는 하루 최대 2만5,000여 명이 드나들던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 사의의 에레즈 국경검문소도 지금은 조용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는 현재 노동 가능 인구의 60%가 실직 상태고 인구의 80%가 하루 2달러도 못 되는 생활비로 살아가고 있다.

1948년, 67년 등 수 차례의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전한 후 인접국으로 피난 나온 팔레스타인인들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요르단내 최대 팔레스타인 정착촌 바카의거리 풍경은 가자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 요르단 정부의 직ㆍ간접적인 차별 정책 때문에 주민들의 피해의식은 훨씬 더 심하다. 바카에서 태어난 에브라힘 아브쥬다(29)씨는 “군이나 관공서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승진에 분명한 제한을 두고 있고 일반 기업 취업에도 차별이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인근 국가로 쫓아낸 팔레스타인인의 고향 방문에 극도로 민감하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난민이 자치지역으로 들어와 친지를 방문하는 것 조차 금지하고 있다. 대신 자치지역 주민이 요르단을 방문하는 것은 가능하다.

요르단강 서안 나블루스에 살고 있는 아브쥬다씨의 큰 아버지는 지난 해 라마단 기간 동안 이곳을 찾아와 “기껏 길렀던 농작물을이스라엘군이 수확하지 못하도록 하는 바람에 배를 곯고 있다”고 호소했다.

기자가 “그렇게 살기 어려우면 친척이 모두 요르단으로 이주해 모여 살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바로 이스라엘이 바라는 것이다.”

 

 

·  <10> '中東의 고아' 팔레스타인
          - 실업률 60%대로 추락
          - 빈곤의 골 갈수록 깊어


·  <11·끝> 포연속에 피어나는 평화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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